관계에 관하여
최근 4주간 서로 관련없는 3명과의 대화에서 사람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했어요. 짧은 주기로 비슷한 주제를 대화하다보니 뭔가 이 관찰, 생각을 정리해놓고 싶더라구요. 생각에 시간을 좀 쓰기도 했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면서 정제도 했겠다.. 까먹기 전에 적어놓자! 이런 거죠. 그냥 제 생각, 관찰이고 이걸 설득하거나 납득시킬 목적으로 쓴 글은 아니에요. 반박시 님이 맞음!!
대주제는 인간 관계인데, 디테일은 조금씩 다릅니다. 모든 주제가 하나의 테마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아서요, 그냥 가까운 주제의 글을 모아놓는 느낌일 것 같아요.
이런 주제를 이야기할 겁니다:
- 관계란 무엇인가?
- 관계와 관계의 구성원은 다르다. (당연한 말인데 풀어서 말해볼게요.)
- 모든 관계는 모종의 역할극이다.
- 내가 관계를 정의하지 않고, 관계로 나를 정의하면 불행할 수 있는 것 같다.
- 관계가 마음에 안들면 변화를 시도해보자.
관계의 종류
인간 관계는 세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싶은 종류는 나와 타인 한 명의 관계예요. 두번째는 나와 집단의 관계인 것 같고요, 이 글과 어느 정도 연관은 있지만 깊이 다루기에는 너무 다른 한 종류는 나와 나의 관계인 것 같습니다. 이것도 언젠가 이야기해보면 좋겠지만, 이 글에서는 주로 나와 바깥 세상, 그 중에서도 나와 타인 한 명의 관계에 대해 다룰 것 같아요.
관계는 변한다
제가 보기엔 관계는 변하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경험해본, 혹은 관찰한 관계 중 조금도 변하지 않는 관계는 없었습니다. 모든 세 종류의 관계가 변해요. 나와 타인의 관계를 예시로 들면요, 시간이 지나면 저를 둘러싼 환경이 변하고요, 그것과 관련 되어서, 혹은 무관하게, 제가 변합니다. 그리고 저와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의 환경이 변하고요, 환경 역시 변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두 명 사이의 관계도 변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모든 관계는 변합니다. 이걸 받아들이는 게 속이 편할 거예요. 중학생 때 절친이 20년 뒤 “당연히” 절친이길 바라면 안되는 거예요. 여전히 절친이라면 기뻐할 일이구요, 그렇지 않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우리는 관계가 변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소중한 관계라면 계속 소중할 수 있도록, 소원한 관계라면 조금 덜 소원해질 수 있도록 에너지를 들여서 노력해야하는 것 같아요. 관계란 게 그렇더라고요. 자격증처럼 한 번 얻는다고 평생 보장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이정도가 핵심이고요, 딸려나오는 이야기는 짧게 쓸게요.
- 따라서 관계가 좋아도 주기적으로 에너지를 써서 관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따라서 지금 관계가 좋지 않다고 해서 완전히 마음을 닫을 필요는 없다.
- 따라서 내가 변한다면, 아주 많은 관계가 변할텐데, 그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3번은 조금 덧붙일게요. 이해를 돕기 위해서. 평생 음악을 해왔고, 가족도 사촌도 모두 음악을 해온 집안에서 자랐으며 음대 음고 음중(?) 음초(?) 음악유치원(?) 음악어린이집(?) 출신이라 아는 모든 지인이 음악인이지만 유일하게 음악인이 아닌 지인이 저인 친구가 있다고 해봅시다. 그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음악을 아주 싫어하게 되었다면, 삶이 아주 많이 변하겠죠? 어떤 주변 사람들은, 가족이라든가, 막 친구를 혼낼 수도 있을 거고요, 싸울 수도 있겠죠. 아니면 그냥 적당히 주변인들과는, 음악을 이제 안하게 되었으니 덜 만난다든가 하는 이유로, 많은 주변인들과 관계가 소원해질 수 있겠죠. 그런데 그가 음악을 싫어하게 되었는데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관계가 달라진다는 이유로 음악을 억지로 계속 해야할까요?
저는 그게 장기적으로 더 행복할 것 같지 않거든요. 그래서 삶이 변하는 순간에 주변 관계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관계를 잘 유지하면서 변화를 이루도록 노력해야겠지만, 변화를 절대 반대하는, 예를 들어 가상 친구의 할아버지가 음악을 계속 하지 않으면 호적을 파버리겠다 !!라고 한다면, 변화를 절대 반대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모든 관계는 어차피 변하기 때문에, 모든 관계를 유지하려고 지나친 희생을 할 필요는 없다는 느낌이에요.
관계와 관계의 구성원은 다르다
저와 타인의 관계에서, 저는 저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저만 그렇다는 게 아니라 모든 관계가 그래요. 무슨 말이냐면요, 저와 엄마와의 관계에서의 저, 저와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서의 저, 저와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의 저는 아주 다른 사람일 거라는 거죠. 사용하는 언어가 다를 거고요, 주로 이야기하는 주제나 관심사도 다를 것이며, 행동하는 방식과 배려하는 정도 .. 저를 구성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외모 빼고는 다 다를 거예요. 그런데 외모를 가꾸는 정도와 표정을 쓰는 정도도 다를 거라서 외모도 좀 다를 것 같기도 하고요.
(프로그래밍식으로 말하면 여러개의 interface 를 구현하는 concrete implementation 이 사람이라고 할 때 하나의 관계에 expose 되는 것은 나를 구성하는 하나, 혹은 여러개의 interface이지 concrete implementation 이 아니다 - 정도인 것 같아요. 훨씬 이해하기 쉽죠?)
핵심은 이게 끝이고요, 이어지는 생각들은 이정도예요:
- 사람들은 관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관계의 구성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어떤 관계를 맺어나갈지는 나와 상대방의 조율로 정하는 건데, 이걸 잘 못해서 불행해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 원하는 형태의 관계를 얻을 수 없다면 아예 관계를 맺지 않는 것보다 원하는 형태의 관계로 바뀔 가능성이 있는 관계를 맺는 게 나을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전부 조금씩 설명할게요. 예시 위주로 간략하게 설명해볼게요.
1: 부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의 관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 수 있어요. 부모님도 사실 이 관계를 힘들어할 수 있거든요. 관계를 바꾸어보는 노력을 하면 양자가 더 행복해질 수도 있죠. 관계가 나쁘다고 해서 개인만 (본인이든 타인이든) 탓하고 있으면 관계가 개선되지는 않아요. 물론 타인이 아주 나쁜 사람이라면 관계를 개선할 가치가 없을 수도 있지만요.
2: 애초에 처음부터 찐친 소울메이트 무해한 친구!!로 관계를 형성했다면, 그리고 모든 사람과 그렇게 했다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연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친구로만 봐 ㅜㅜ”라고 말하게 될 확률이 높다는 말이예요. 문제는 당신이 아니라 당신이 (무의식중에) 선택한 관계인 것 같아요.
3: 카페 사장님이 내가 파는 신제품에 지금 관심이 없다고 해서 영원히 얼굴을 보지 않으면 내 물건을 살 확률이 0일 거고, 적어도 한 분기에 한 번이라도 들르면 0은 아닐 거예요. 친해지고 싶은 사람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에너지의 가성비 문제가 있겠지만.
모든 관계는 역할극이다
위 주제와 관련이 있으면서도 약간 달라요. 위 주제는 “모든 관계에서 우리는 나의 모든 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하나의 역할을 수행한다”에 가깝고요,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그 수행하는 역할은 사실 나와 상대방이 정하는 게 아니라 사회에 정해진 몇 종류의 역할극을 조금씩 변형해서 쓴다”에요. 좀 더 설명해볼게요.
- 부모자식간의 관계란 걸 들고오면요, 부모님과 제가 처음 만나서 “아이고 반갑습니다. 전철호입니다. 말은 서로 놓을까요? 주로 어떤 주제의 대화를 할까요? 학업과 장래이야기를 좀 하고, 정치 종교 이야기는 우리 관계에서 언급을 덜 하는 걸로 할까요?”라고 정한 적은 없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어떻게 적당히 관계를 형성한 거지.
- 연애도 비슷하죠. 우리 서로 어떤 일을 할까요? 돈을 버는 사업을 함께 할까요? 서로 감정적 지지를 할까요? 어느 주기로 볼까요? 추석 설날에 가끔 가뭄에 콩나듯이 볼까요? 연락은 어떤 방식으로? 어색한 문자? 친근한 전화? 이런 걸 정하지 않잖아요? 사회에서 다들 생각하는 어떤.. ‘연애는 이런 것이다’라는 모델에서 서로가 맘에 안드는 걸 조금씩 고쳐서 쓰잖아요.
이런 느낌에서 관계는 역할극이라는 거예요. 친구 관계가 어때야하는가? 연인 관계가 어때야 하는가? 연인 관계와 부모자식 관계는 명확히 다르죠. 이걸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정한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너와 나의 관계는, 무조건! 사회의 영향을 받았다는 거죠.
핵심은 이상입니다. 딸려나오는 말은:
- 역할극을 다들 조금씩 바꿔서 쓰거든요. 그런데 내가 이 역할극에 너무 집착하거나, 상대방이 너무 집착하면, 이걸 조금 바꿔서 써도 된다고 말하는 게 관계에 더 좋을 거예요. 별 믿음도 안가는데 괜히 남자친구가 항상 듬직한 척 하는 게 별로라면 그냥 이야기해보는 게 양자한테 더 나을 수 있어요.
- 그런데 그 역할극을 바닥부터 다시 써도 괜찮아요. 그건 익숙하지 않은 거지 이상한 게 아니에요. 사회가 제공하는 역할극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어차피 다른 사람들도 그대로 쓰지 않거든요, 많이 바꿔써도 돼요. 양자만 행복하면 그만이지.
- 나는 이 관계에서 행복한데 “그건 정통 역할극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부부사이에 아이가 있어야지!! 이런 말 들으면 아하, 저 분은 부부관계 역할극 버전 1990을 좋아하시는구나~ 저희는 버전 2020을 좋아해요~ 라고 말해도 괜찮아요. 그 사람이 잘못 아신 거예요.
내가 관계를 정의하지 않고, 관계로 나를 정의하면 불행할 수 있는 것 같다
위에서 이야기한 “관계와 관계의 구성원은 다르다”에서 “나”에게 초점이 맞춘 주제예요. 우리는 살다보면 아주 많은 관계를 맺어요. 그리고 가끔 그 관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무언가를 온전한 “나”라고 오해하기도 해요. 근데 저는 그게 아닌 것 같거든요. “나”는 분명히 내가 맺는 모든 관계에 영향을 줘요. 근데 관계의 공통점이 온전한 나는 아니에요.
이걸 착각하면 불행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주변 사람들이 다 말이 엄청 많아요. 그래서 나는 내가 말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고, 남의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전혀 아닐 수 있는거죠. 알고보니 나는 내 이야기를 하면 아주 행복해지는 사람이었고 그런 관계들을 더 많이 만들어야 내가 행복해지는데, 그냥 ‘받아들이고’ 좀 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잖아요.
이건 특히 독립하지 않은 부모자식 관계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 같아요. 나는 적극적이고 활발한 사람인데 부모님이 원하는 부모자식 역할극에서 자식은 조용하고 수용적인 사람이라면, 내가 조용하고 수용적인 사람인 걸로 착각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나중에 ‘어? 알고보니 나 완전 외향적이네?’하는 거죠. 이게 발견되면 다행인데, 이 역할에 너무 집착해서 ‘아냐, 나는 조용하고 수용적인 사람이야.’라고 딱 정해버리면, 스스로 더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닫는 거죠. 그래서 전 사람들이 관계로 나를 유추하는 것도 좋지만, 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고정해버리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 내가 지금 맺고 있는 모든 관계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 역할이 나와 같은 건 아니다.
- 내게 익숙한 역할이 사실 나를 불행하게 하고 있을 수도 있다.
- 내게 낯선 역할이 의외로 아주 잘 맞을 수도 있다.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글을 쓰기 시작한지 2시간 이상이 지나서 체력이 달리거든요.. 후다닥 끝내겠습니다. 퀄이 딸려도 완성된 게 중도포기보다는 나으니까!
관계가 마음에 안들면 변화를 시도해보자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가 마음에 안든다면, 역할극 내에서 수정을 하시거나, 아니면 아예 역할극 전체를 바꾸셔도 괜찮아요. 예를 들어볼까요. 관계에서 합의한 대화주제를 빼거나 넣어도 돼요. 나는 부모님과 돈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나는 부모님과 부모님의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싶어. 하셔도 됩니다. 어색하겠지만 양자가 동의하면 그래도 돼요. 물어보세요. 더 행복한 관계를 만들 수 있어요.
나는 지금 너와 맺고 있는 관계가 절친인데, 내가 피곤해서 잠깐 절친에서 데면데면친구로 내려놓고 싶어. 물론 말을 예쁘게 해야겠지만, 그래도 됩니다! 억지로 절친 관계를 유지하려고 에너지를 넣다가, 관계에 대한 피로를 사람에 대한 불호로 착각해서 친구를 영영 잃는 것보다는 연락을 그냥 잠깐 뜸하게 하고 상황이 나아졌을 때 다시 친해지면 되는 게 나을 수 있잖아요?
관계가 영원 불멸하며, 사회가 정한 모든 규칙을 엄격히 지켜야하며, 양자가 합의한 역할을 뒤집으면 안된다 <- 이렇게 생각하면 불행해지는 것 같아요. 이야기해보세요. 관계를 바꾸면 초기엔 조금 어색할 수도 있고, 아니면 양자가 그 관계에 불만족해서 다시 조정을 해야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바꾸는 걸 시도해도 괜찮아요. 다들 많이 해요!
체력이 달려서 여기까지 할게요 재밌어서 더 듣고싶은 부분이 있으면 커피 한 잔 사주면 열심히 이야기해줄게요 ~ 빠이 ~